낯선 곳에서 낯선 나를 조우하다
워크숍 일정을 마무리하고, 주최측인 부탄 이민국에서 마련한 만찬을 끝내고 이제 호텔방에 와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혼자 고요하게,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대면하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익숙한 곳에서 멈추었던 질문들과 생각들, 고민과 성찰이 가능하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낯선 존재일 때가 많은데, 내가 사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그런 낯선 나를 대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장소, 낯선 국가에서 낯선 나를 보는 것이 오히려 편할 때가 있다.

햇볕이 행복을 가져다 줄지도
부탄은 그런 나라다. 만나는 사람들 각자가 뭔가 스토리를 지닌 듯 친근하고, 햇빛은 너무나도 따스하다. 워크숍이 열린 국립도서관 회의실은 쌀쌀했는데, 커피타임과 식사시간에는 다들 밖으로 나와 햇빛을 쪼면서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햇빛이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부탄에서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개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부탄은 햇볕의 나라다. 함께 이곳에 온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님은 예전 자신이 어렸을 적인 1950년대, 한국에서 느꼈던 그런 햇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제 도무지 느낄 수 없는 그런 투명하고, 신비한 햇볕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내부 공간에서 지내고, 또 업무가 종료된 후에도 각종 '방'과 '룸'으로 들어가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불행한 이유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국민총행복, 부탄의 자랑스런 철학
국민총행복이란 개념을 처음 내세운 사람은 부탄의 4번째 왕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3번째 왕이 갑작스레 사망해 그가 17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던 때였다. 그 청년의 입에서 "국민총생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총행복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17살, 묵상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많았던 한 청년의 해법이 바로 '국민총행복'이었다. 그의 이 파격적인 접근은 다시 그의 아들이자 부탄의 5번째 왕에 이르러 부탄의 국가기조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2008년 부탄의 헌법이 제정될 때, 제8조에 명백히 '국민총행복'을 언급하며, 모든 국가 정책의 시발과 방향이 '행복'과 연계시켰다. 또한 헌법으로 국토의 최소 60%는 산림으로 유지되어야 함을 명시하여, 개발의 한계를 정했는데, 현재 국토의 73%가 산림이다.

이 5번째 왕은 "언제까지 부탄에 왕이 있을 수 없고, 왕이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신념 하에 지난 2008년 민주주의 직선선거로 최초로 선거를 실시, 내각책임제로 전환되었다. 당시 국민은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고, 계속 왕국으로 남길 원했지만, '왕'은 스스로의 힘을 제한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쯤되면, 부탄 왕은 옛날 로마의 현제를 동시대에 보는 것과 같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올리겠지만, 왕궁은 행정청사와 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데, 위치도 낮은 곳에 있고, 규모가 엄청나게 작아 그저 일반적인 자택같이 보인다. 그런 검소함과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에, 부탄 왕은 부탄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다.

오늘 만찬에서 옆에 있던 부탄 공무원에게 '행복'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simple life'였다. 과도한 물질과 소유가 과연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냐고 그가 반문했다. 먹을 정도의 음식, 추위를 피할 거처, 뭐든 일할 수 있는 권리, 이 정도면 행복한 거 아니냐고 한다. 그에게선 어떤 가식적이거나 뻔한 느낌이 전해지지 않아 정말 그렇지 않을까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재난이 닥쳐서 관련 물자생산이 증가해도, 범죄가 증가해 제반 사회비용이 증가해도, 삭막한 사회구조로 인해 의료비용이 급증해도, 그 모든 것은 GDP 상승에 일조한다. 단지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고, 서비스가 증가하고, 생산량이 증가한 것만이 GDP가 아닌 셈이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부정적인 결과로 유발된 생산이든, '증가된 생산' 분량에 결국 해당 국가의 전반적인 '상태'를 측정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반면 GDP가 높을 수록 국민총행복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국도 세계 10대 경제권이지만, 2003년에 영국에서 조사한 바로는 행복지수가 130위 권에 머물렀다. 부탄은 경제로는 최하위권이지만, 행복지수는 6위를 기록했다.

부탄은 한반도의 1/5 정도인 작은 나라지만, 전 세계에 '행복'이란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나라다. 그것도 개념이 아니라 일상 삶과 국정실현에 있어 구체적으로 '국민총행복'을 실현해 간다는 점에서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나라이다. 

내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탄연구센터(Center for Bhutan Studies)를 방문하게 된다. 이 곳에서 보다 자세하게 국민총행복에 대해 알게 되고, 관련된 자료를 얻게 되길 기대해 본다. 참, 오늘 워크숍에 알게 된 사실인데, 2009년 부탄을 방문한 한국인은 총 155명이다. 공식방문과 관광객을 다 합한 수치인데, 이는 2009년 한해 한국을 방문한 부탄인 180명 보다 적은 숫자다. 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부탄을 방문했으면 하면서도, 한국인의 방문이 오히려 부탄인의 순수함에 오점을 줄까 지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국 여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예쁘다"라고 믿는 이들에게 한국은 기적과 대단한 나라이다. 이런 환상을 깨는 게 좋을지, 아니면 계속 갖게 하는 게 좋을지, 나도 모르겠다.

<누가 세상을 바꾸는가>를 읽고 있는데, 해외에서의 독서는, 한국에서의 독서와는 달리, 느끼는 것과 묵상의 질이 다름을 느낀다. 책이 빨리 넘겨지지 않아 걱정이다. 곳곳마다 탄성을 지르며 줄을 긋고, 내 생각과 아이디어를 병기해야 한다. 꼭 이 책만이 아니다. 긴 출장길 때문에 공항에서 구입해서 오는 내내 다 읽어버렸던 <부자오빠 부자동생>과 <행복의 경제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무척 빈번하게 느끼는 거지만, 여행에서 선택한 책들의 내용은 비슷한 주제를 가진다.

부탄에서 방콕, 다시 한국으로 오는 일정에서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오두막>, 그리고 읽다가 다 못 읽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을 읽을 예정인데,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어떻게 다 읽냐고? 비행시간만 8시간이지만, 방콕에서도 8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총 16시간 동안 책 3권은 가능하지 않을까.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는 다는 건, 마치 에스프레소에 초콜렛 가루와 휘핑크림을 얹은 카페모카를 마시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현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 카페모카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마시는 셈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느꼈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카페모카를 함께 마시는 사람과 함께 따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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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1 : Commen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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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0.01.15 10:06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untoday.tistory.com BlogIcon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2010.01.18 16:50 신고

      반갑습니다~ 김영진 선생님, 덕분에 잘 다녀왔구요~ 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네요^^ 부탄에서 많은 생각과 성찰들 했는데, 이번 작업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2010.01.18 14:12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untoday.tistory.com BlogIcon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2010.01.18 16:51 신고

      ㅋㅋ 내 아내기 때문에 하는 찬사가 아니공?? 내 글은 그냥 무미건조하다고도 생각되는데.. 모르겠넹~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한 은사를 주신 것도 같아 감사해요. 사랑해~

  3. addr | edit/del | reply 2010.01.19 20:58

    비밀댓글입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2010.02.03 16:11

    비밀댓글입니다

  5. addr | edit/del | reply 우주인 2010.06.08 17:28 신고

    오랫만에 오빠 블로그 올라와서 글 읽고 있는데, 부탄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흥미로운지 처음 알았어요! 부탄에 관한 정리된 다른 글이나 보고서가 또 있는지 알고 싶어요~

  6. addr | edit/del | reply bonak 2010.11.11 10:28 신고

    제 친구들 중엔 부탄 애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곳이 그렇게 오지였다는 것을 지금 처음 느껴봅니다. 가기 힘든 곳이었군요ㅎㅎ

  7. addr | edit/del | reply 손영란 2011.02.01 10:49 신고

    님의 부탄에 대한 정보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영란